몇 시간 만에 쓱 읽어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책이었다.

 

법정소설이라는 소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과거 일본 법정의 모습과 재판 방식 중 현재 우리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분이 꽤 존재했다는 점, 법원 출입기자의 일상과 감성을 짧게 묘사한 부분 등은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읽기 전부터 좀 거슬렸는데, 일본 역사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반전으로 등장한다. 일본의 사회계급에 무지한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장치였다. 급 흥미를 잃었음.

 

작가의 말이 3편이나 붙어있는데, 그야 말로 책 분량을 늘리기 위한 사족이었다는 느낌. 작품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말이 긴 작가치고 독자에게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게 하는 자는 드물다. '유언서'라는 (재미없는) 단편도 붙어있다.

 

오랜만에 읽어내린 소설이라는 점에서 완독 후 기분은 상쾌했다. 새해 첫 책으로 고른 것치고 실패는 아닌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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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 10점
로렌 슬레이터 지음, 이상원 옮김/에코의서재

별은 셋 반. 정도가 합당하겠다.
제목만 보고 책을 사게 되는 것, 나에게는 무척 드문 경우다.

보통은 작가가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지, 내 취향과 거리가 먼 요소가 하나라도 있지 않은지 꼼꼼하게 훝어보는 편. 이 책은 드문 몇 케이스에 속한다.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란 제목은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거짓말은 자기애의 한 방식, 자기보호의 비뚤어진 모습이다. 이 때의 거짓말은 상대를 속여 실질적 이익을 보려는 계산적인 종류의 것이 아닌, 할 필요없고 얻게 되는 이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을 들으면 절로 움직이는 무용수의 다리처럼 어느새 스르르 흘러나와버리는 종류다.

유감스럽게도, 책은 <왜>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다>라는 어깨 두드림과 함께,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은 죄악이지요. 모든 죄악은 신으로부터의 격리를 뜻하니까요." "좋다.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하지만 로렌, 난 네가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넌 거짓말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속임수라는 건 네 성격의 일부이니 결국 넌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야." p.251

<간질>이라는 육체적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책 속 로렌의 거짓말을 격렬하고 필사적이다. 첫 번째 이유는 사랑받기 위해서. 어릴적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원했고, 이후에는 누구든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발작을 일으켰다. 두 번째 이유는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남과 구별되는 특징을 부여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기기 위해 간질환자란 거짓말을 선택했던 것.

이 책이 픽션이냐, 논픽션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는 저자가 사용한 마케팅 트릭에 불과할 뿐, 정작 독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더구나 로렌 슬레이터가 본문을 통해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고 있는 마당에 '논픽션' 여부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논픽션 논쟁 자체가 작가가 자신의 책에 '특별함'을 부여하려는 <거짓말>인 셈이다.

온갖 혼란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스로를 비소설 작가로 생각하고 그렇게 인정받고 싶습니다...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 밝히지 않기고 결심한 이유는 첫째, 저라는 존재의 핵심을 그려 보이기 위해서이고, 둘째, 생각의 길을 잘라버리는 균열 속에서 저처럼 사는 것은 외롭기 때문입니다. 편집진이나 독자들이 모두 저를 따라와 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가지고 노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혼란 속에 들어와 달라고, 발밑의 대지를 포기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공중에 붕 뜬 공포스런 상태가 다른 어느 것보다 진실되기 때문입니다...p.204~205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책에서 로렌이 제시하는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은 윌리엄 제임스의 '의지 B'로 요약된다.

윌리엄 제임스는 의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A라는 의지와 B라는 의지다. 의지 A는 학습으로 얻어지며 우리가 고개를 높이 들고 불평불만을 꾹 누른 채 열심히 일하는 종류의 의지다. 반면 의지 B는 한층 느슨해 보이지만 지니기는 더 어렵다. 이는 의욕 충만이 아닌 기꺼운 마음이다. 한판 대결이 아니라 인생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깨지기보다는 구부러지는 상태. 파도를 멈추기보다는 그 위에 올라타려는 용기다...의지 B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적극적인 수용, '네.'라고 말하기다. 이 의지를 배우고 싶다면 자신의 목소리와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의지 B를 안다면 인생을 아는 것이다...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흐름을 타다.'라든지 '적수의 에너지를 내 무기로 삼는다.'는 표현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p.74~75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나 작품의 가치와는 별개로, 윌리엄 제임스의 '의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다 한다.중간중간 다소 억지스런 로렌의 방황과 성적 집착 부분은 독자를 다소 지루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은 책이 나름대로의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던지는 방식으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파도에 맞서 싸우려는 어리석음. 구부러질 바에야 부러지겠다고 몸을 꼿꼿이 세우는 오기. 그게 얼마나 바보 짓인지를 알기까지, 인간에게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주어진 인생을 그대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 시간의 무게를 견디려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사람,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기 보다는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그런 이가 진짜 삶의 방식을 아는 사람이라고, 지금은 수긍한다.

그래서, 이 책을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실천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지하기라도 해보라는 뜻에서 말이다. 나는 그러질 못했었다.
http://nadie.tistory.com2009-03-29T08:15:09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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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삼월은 붉은 구렁을 - 6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소설에 대한 내 취향은, 말하자면 '올드 스쿨(of the old school)'에 가깝다.

기교를 발휘한 경쾌한 커브볼보다는 우직하고 무거운 스트라이크. 정통의, 담백한, all or nothing, 모 아니면 도, 근성, 고뇌, 정면돌파.

그러니까 아멜리 노통브보다는 필립 클로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보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박민규보다는 (하품을 하더라도) 김훈을 읽는다는 얘기다.

이러하다보니, 굳이 고른다면 온다 리쿠보다는 미야베 미유키.로 결론이 났고. 처음으로 손에 든 온다 리쿠-'밤의 피크닉'은 읽자마자 다른 이에게 넘겼을 수밖에.

<야밤에, 소풍을, 마지막 학교 행사, 현실감 없이 쿨한, 비밀을 간직한 10대들>이라는 설정이 주는 야릇한 설레임이 이 책의 전부,라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화사하고 매력적인 포장지를 뜯고 나자, 동네 제과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생크림 케이크가 나온 기분이랄까.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역시 더없이 화려한 포장을 자랑한다. 액자형, 4부작의 거울 소설이라는 형식, 독서가라면 누구나 바라마지않는 궁극의 책, 기묘한 저택과 노인들, 야간 열차의 침대칸, 아름답고 잔혹한 10대 이복자매...

"이렇게 아름다운 두 사람이 그렇게 감미로운 비밀(그때 나오코는 이복자매라는 말이 매우 로맨틱하고 특별하게 여겨졌다)을 공유하다니 못됐다고 생각했다(p227)"

작가는 독자를 나오코의 위치에 앉힌다. 평범한 외모에 진중한 성격, 전형적인 '독자'인 나오코는 미사오와 쇼코라는 비현실적으로 대담하고 아름답고 총명하고 비극적인 인물들을 동경하며 바라본다. 설레임, 동정과 동경, 마치 10대 아이돌을 향한 소녀들의 감정같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자잘한 이야기들, 작가의 다른 장편들에 대한 예고편은 마치 포켓몬 인형을 모으듯 마니아들을 자극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듯한 구성만 눈에 띌 뿐, 스토리는 온통 클리셰로 가득하다-보물을 찾으러 가는데 사실은 내 주머니 속에 있었다거나(2부), 피를 부른 비극이 사실은 어이없는 착각에서 비롯됐다거나(3부)...

못마땅해, 이건 엔터테인이지 문학은 아니야,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히 읽은 이유는, 중간중간 흩뿌려져있는 짜릿한 공감의 문장들 때문. 김태희의 어이없는 연기력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녀의 뚜렷한 이목구비에는 역시 감탄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
 
"보수파에 속하는 평균적인 일본인은 다양한 쪽 세계의 사람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지만, 자기하고 같은 보수파에 속하는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은 미워합니다. 혼자서 다른 걸 하지 마, 혼자서 다른 걸 생각하지 마, 하고 말이죠. 일본 사람은 인간관계를 귀찮아하면서도 또 고독에는 굉장히 약하지 않습니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다 함께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있는 셈이에요. 저 사람도 나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난 고독하지 않아, 그런 거죠. 그래서 자기만 다르다든지,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는 일에 많이 민감한 걸 겁니다. (p92)"

"좋은 글을 읽는다는 건 쓰는 것과 같으니까. 아주 좋은 소설을 읽다가 행간에 숨어 있는, 언젠가 자기가 쓸 또 하나의 소설을 본 적 없어? 그게 보이면, 난 아아, 나도 읽으면서 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거든. (p150)"

"소설을 쓰는 일이 현기증이 날 만큼 기쁘다는 부럽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고통이다. 쓰다 보면 꽤 재미있기도 하지만, 열의가 지속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게다가 밤중에 쓴 편지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들떠 있을 때 쓴 글치고 써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음날 다시 읽어보면 어찌나 엉망인지 기운이 다 빠질 정도다. 야마다 에이미는 소설을 쓸 때 한 마디도 고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도 안 돼'하고 부르짖는다(p316)"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책을 좀 읽는다고 자만하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것도 터무니없는 환상이에요. 인간이 한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거든요. 나는 서점에 갈 때마다 내가 읽지 못한 책이 이렇게나 많다니,하고 늘 절망합니다. 내가 읽지 못하는, 천문학적인 수효의 책들 중에 내가 모르는 재미가 넘치는 책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심란할 수가 없어요(P58)"

어쨌거나, 다시 온다 리쿠를 읽을 일은 없을 듯하다. 달콤하고 자극적인 쿠키와 사탕보다는, 백반에 구수한 된장찌개가 취향인 탓.
결국, 나같은 '구식 독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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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The Secret - 6점
Rhonda Byrne 지음/Atria Books
방콕의 쇼핑가를 헤매다 asia books에서 집어든 책.
오프라 윈프리의 강추에 힘입어 해리 포터 주문량을 따라잡았다는 광고 문구가 기억에 남았던지라.
책을 계산대에 올리며 혼자 픽 웃었던 건. 1~2년 전만해도 이런 책을 돈내고 사 읽었을까, 더구나 여행지에서.

나이를 먹어서라고 해도 좋고, 관계에 짓눌려서라고 해도 좋고, 사회의 그을음에 목이 막혀서라고 해도 좋고.
이런 류의'자기계발' 서적은 30대 이상에게 어필하기 마련. 좌절과 실패와 우울의 그늘을 어설프게나마 겪어본 사람이라면 '당신은 할 수 있다'거나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단순하고 모호한 말이 갖는 달콤한 위안의 위력을 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원서로 읽기를 권한다.
번역본을 읽는 이유를 1.원어를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2.반드시 정확한 의미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어 전문 번역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로 한정짓는다면. 이 책은 두가지 모두에 해당 사항이 없다. 문장은 지극히 평이하며, 간혹 모르는 단어가 출현하더라도 문맥이 워낙 단순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학 영어교과서 수준.

특히, 평소 '사랑만이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라던가 '좋은 생각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격언을 몹시 닭살스러워하는 취향이라면, 반드시 원서를 택하도록. 아무리 책 내용에 딸꾹질이 나오더라도, 최소한 180페이지가 넘는 영어 원서를 끝까지 읽었다는 보람은 얻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의 모든 내용이란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간단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Human becomes what he or she thinks about'
달리 표현하면, 'You can everything you want', 'You are the master of your life,and the Universe is answering your every command' 되겠다. 누구든 자신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긍정하면, 무엇이건 가질 수 있다는 얘기. 이것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다양한 사례와 함께 되풀이된다.

*기억에 남는 내용 1
-지갑 속의 만원짜리 지폐들을 마치 10만원 또는 100만원짜리 수표인 것처럼 생각해보란다. 연두빛 지폐 한장 한장이 희멀건 수표라고 굳게 믿으면, 언젠가 그 지폐만큼의 수표를 지갑에 넣고 다니게 된다는 것. 지하철에서 읽다가 몹시 웃었다.

*기억에 남는 내용 2
-우주를 움직이는 이 'secret'의 특징은 부정 표현이 안 먹힌다는 것. 즉, '난 옥수수를 먹고 싶지 않아'라고 되풀이 생각하면, 이 우주의 에너지란 녀석은 '먹고 싶지 않아'는 생략하고 '옥수수'만 접수한단다. 즉, 먹기 싫은 옥수수 잔뜩 먹게 되니, 언제나 긍정형 소망(~하고 싶다.~갖고 싶다)만 생각하라는 것. 이런 예로 든 것 중 하나가 반전운동인데. anti-war movement는 위의 법칙에 따라 'anti'를 뗀 'war'만 가져올 수 밖에 없으므로,당장 때려치우란다. 대신 'pro-peace movement'를 하라는 충고.

*기억에 남는 내용 3
-'the secret'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placebo effect를 든다. 나름 수긍이 갔던 부분. 생각의 힘이 인체를 치유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나름대로, 즐거운 독서였다. 원서를 만화책 보듯 쉽게 읽어내렸다는 기쁨 외에도,
이제는 이런 '당연하고 단순한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나에게도 '먹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내 이마에 새겨진 내 이름도, 가끔 내 목소리로 불러줘야 한다는 것.

oftentimes, you give others the opportunity to create your happiness, and many times they fail to create in the way you want it. Why? Because only one person can be in charge of your joy, of your bliss, and that's You.
http://nadie.tistory.com2007-10-09T06:05:51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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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어느 날, 아내가 죽었다.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그녀를 목격한 것은 기르던 강아지 뿐.
실의에 빠진 남편은 강아지에게 말을 가르쳐 아내가 죽은 이유를 알아내려 한다.'

스토리라인만 보고 더럭 구입한 책입니다. 매력적이지요.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애매한 상황. 그리고 가족처럼 여기는
개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모든 동물 애호가들의 꿈. 주인공을 언어학자로 설정해, 나름
학문적인 접근을 조금 선보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집니다, 이 책은. 무얼 더 기대하는 게 과한 요구일 수도 있겠지요.
매력적인 설정 덕분에 첫 장을 펴들 때는 잔뜩 기대에 넘쳤습니다만,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머리에 남는 것은. '우울증, 정서장애가 심한 사람은 배우자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교훈 정도.

남편이 자신이 모르던 아내의 이면을 추적해가는 형식이지만, 긴장감은 없습니다. 사실 아내
의 '비밀'이란 워낙 뻔한 것이다보니, 서스펜스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게 당연하지요.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을 기대하신다면 읽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흡입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애완 동물과의 의사 소통에 관심이 있다면. 엉터리 같긴 하지만 '개 짖는 소리 번역기'
를 한번 사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면, 아무래도 우리 집 강아지가 내 말을 전부 알아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즐겁게 읽힐 겁니다.

도서관 고양이 1호인 큐라씨는 '맘마', '엄마', '자자', '간다' 등의 간단한 말들을 알아듣습니
다. 특별히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만, 상황이 불리할 때는 못 알아듣는 척하고, 먹을 것이 걸려
있을 때는 가장 빨리 알아듣는 등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을 살 때, 애완동물
에게 말을 가르치는 비법이라도 실려 있다면 큐라씨에게 실험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응 ? 나한테 뭘 가르친다고 ?
























어쨌거나. 초반부, 역사상 개에게 말을 가르치려 시도한 사람들의 계보를 읽는 재미는 쏠쏠합
니다. 작가가 소개하는 사례들이 허구인지, 실존 인물들의 이야긴지 궁금해 열심히 구글링해
보았지만, 전혀 검색이 안되는 군요. 혹시 아래 세 인물들과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으시면,
제게도 알려주시면 대단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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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된 '말하는 개' 사례들*

1.16세기 문헌에 기록된 리옹의 개.
이 개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이 지역에 들여온 케이스혼드 품종으로, 태어나자마자 어떤 부인
에게 입양되었다. 그녀는 출산 직후 아기를 잃어 슬픔에 젖은 상태였다. 그녀는 개에게 젖을
먹었고, 잠옷을 입히고 보닛 모자를 씌웠다. 강아지가 자라면서 '엄마'는 공을 들여 말을 가
르쳤다. 그녀의 맹렬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통역
을 필요로 했다. 개는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개들 사이에서 까불고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개는 엄마가 병들 때까지 13년간 행복하게 살았고, 엄마가 임종할 때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감던 날, 개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당신이 듣지 않으면 나는 말할 수
없어요.' 개는 엄마가 죽은 후에도 1년을 더 살았지만, 인간의 소리든 개 짖는 소리든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개가 죽은 후에 리옹 주민들은 그 개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고, 밑단에
개의 마지막 말을 새겼다.

2.18세기 헝가리인 바실의 기묘한 사연.
바실은 성서에서 뱀이 이브에게 말을 했다는 것을 근거로, 초기 에덴에서는 모든 동물이 말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을 떠나면서 동물들이 말하
는 능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물들에게 말할 능력이 없어진 것은 온당치 못하므로,
그들이 갖고 있었던 최초의 언어를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실은 비즐라(헝가리산 사냥
개)강아지 몇 마리를 각자 담이 있는 정원에 넣고 실험을 했다. 강아지들에게 충분한 음식과
물을 주었고, 매일 목을 마사지해주며 말을 하도록 부추겼다. 대부분 말을 전혀 못 했지만, 한
마리는 프랑스어를 중얼대는 듯한 소리를 냈다(나중에 연구자들은 그것이 알자스 방언임을
알아냈다). 다른 한 마리는 '쇠고기구이'를 뜻하는 헝가리어 한 마디만 배웠다. 바실의 실험은
교회의 비난을 받았다. 신이 개에게서 말하는 능력을 빼앗은 것은 공평치 않다는 주장이 특히
가장 비난을 받았다. 결국 그는 20년 가까운 나머지 생애를 감옥에서 보냈다. 그에게 붙잡혀
있던 비즐라 개들은 실험실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뛰어다녔다. 프랑스어를 흉내내던 개는 마
구 짖으며 싯구를 흉내냈고, 헝가리어 한 마디만 배웠던 개는 쇠고기구이를 구걸했다. 결국
놀란 사람들이 개들을 바실의 집까지 쫓아냈다.

3.웬델 홀리스 사건은 가장 최근에 벌어진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
홀리스는 몇 년 동안 백 마리 이상 되는 개의 구강을 수술해서 단어가 잘 발음되도록 입천장
모양을 바꾸었다. 홀리스가 뉴욕의 아파트에서 벌인 수술의 후유증으로 몇 마리는 죽었고,
여러 마리가 달아났다. 몇 년간 개가 짖는 소리를 참아왔던 이웃은, 개 한 마리가 배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목에 상처가 나 있고 입 모양이 뒤틀린 이 개는 법정
에 나와 증언했다. 개는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미워요'와 '따끔하게 아프다',
'형제들이 갔다'라는 말을 할 줄 알았다. 배심원단은 한 시간 후에 평결을 내렸고, 홀리스는
5년간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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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민음사
나에게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은, '북 스탠드 심심풀이'랄까.
약속시간을 좀처럼 지키지 않는 누군가를, 서점에서 기다릴 때 집어드는 종류다.
기다리던 이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 어깨를 두드려도, 미련없이 곧장 덮어버리고
나갈 수 있는. 별로 내키지 않는 향이지만 씹는 재미로 물고 있다가, 쓰레기통이 보이면
바로 뱉어버리는 껌 같은.

바나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바나나를 읽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내게 바나나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하더라,는 거다.

비슷한 인물, 같은 아픔, 비슷한 로맨스, 익숙한 배경 묘사, 언제나의 문체, 심지어 책 디자인도. 굳이 결말을 보지 않아도, 한줄 한줄 찬찬히 읽지 않아도. 바나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각기 다른 제목을 달아 여러 권으로 나누어 팔고 있는 것 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닐게다.

어쨌거나. 오빠의 책꽂이에서 바나나를 발견했을 때, 과장 안하고 사막에서 갈치떼를 만난 것처럼 놀랐다. 아니 어쩌다가,라는 질문에 오빠는 버리기 귀찮아서,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워낙 얇고, 내용도 가벼울 것이 확실하다보니, 지하철에서 멀뚱멀뚱 서 있을 때 읽기에는 안성맞춤. 들고 다니며 읽은 바나나는 [키친] 이후 처음이다.

바나나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은, 읽는 동안에도 읽고 나서도 아무 생각 없다는 것.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기억하고 싶어 애쓸 것도 없다. 그렇게 따지면 대단히 깔끔하달까, 뒤끝이 전혀 없다. [하드보일드 하드 럭]은 조금 예외가 된 셈. '하드보일드'의 마지막 부분, 딱 한 문장이 머리에 와 박혔다.

 "...나는 넘어져도 그냥은 일어나지 않는다..."

맥락상, 아무리 재수없는 날이라도 재미있는 일이 한두가지는 있다, 뭐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이었는데. 너무 멋진 문장이어서라기보다는 우연히도 요즘의 내 마음 상태에 끼릭 맞아 떨어졌기 때문.

넘어지는 것 따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몸이 좀 기우뚱하는 게 느껴지자 불안해진다. 어쩌지, 진짜 넘어지려는 건가. 아플텐데, 그냥 서 있을 걸, 괜히 걷기 시작했나. 그러던 중이었다,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온 건.  "나는 넘어져도 그냥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고 싶다. 넘어져서 얼굴이 땅에 닿으면, 땅 위에는 뭐가 있는지 찬찬히 살피련다. 조약돌도 몇 개 집어 들고, 누르스름한 흙도 쓰다듬어 보고. 그렇게, 넘어져도 '그냥' 일어나고 싶지는 않다. 맞다, 덕분에 다시 베짱이 생겼다.

한참 중얼거릴 문장을 하나 찾아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다시 펴들 일은 없을 게다. 딱 그 정도의 가치다, 나에게 바나나 소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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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Media2.0
'..인생이란 참 기이하다. 삶은 예측 불허다. 분별할 만한 틈도 주지 않고 한데 뒤엉키고, 은총의 순간인가 싶으면 피비린내 나는 순간이 닥친다. 늘 그런 식이다. 인간은 길가에 놓인 작은 조약돌 같다. 기나긴 세월 동안 한자리에 박혀 있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떠돌이의 우연한 발길질에 냅다 날아가는 조약돌. 그런 돌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둡고 축축하고 무겁습니다. 폭력, 부조리, 죄의식.
읽는 내내, 심장 위에 텅 쇳덩이가 놓인 듯 답답하고, 괜시리 손끝이 저려옵니다.
그런데도 혹은 그래서, 이 소설은 제게 '올 상반기 최강'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삶을 '얼굴에 정면으로 뱉은 침처럼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존재하기에 죄악을 저지르고, 죄악을 저지르기에 인간인. 죄인은 눈물을 흘리고, 무고한 자는 피를 부릅니다. 작가는 회색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담담하게 조금은 우울하게.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켜며 생각한다. 사람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하루는 너무 길고, 아직도 살아야 하며, 살아나가야 할 나날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아직도,아직도,아직도. 그렇게 병나발을 불며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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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처럼 시작하지만-물론 그 의문의 원인과 결과가 슬프게 잔인하게 마지막을 장식하긴 하지만-, 이 책은 스토리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 평범한 주민들의 추악함과 무력함을 양파 껍질 벗기듯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책은 영화 <도그빌(Dogville by Lars von Trier)>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인간성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를 감상하고 싶다면, 영화와 소설을 함께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이름을 외우기 힘든 수많은 인물들이 도마 위에 올려져, 각각의 보잘 것 없는 인생과 존재의 가벼움을 모두 뒤집어 내보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장사꾼 바스팽에 대한 묘사.


'..그는 악덕도 사치도 몰랐다. 바라는 것도 없었다. 다만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사고팔고 목적도 없이 황금을 재어두고, 그저 그런 식이었다. 바스팽은 1931년 패혈증으로 죽었다. 발에 난 상처, 자상이라 하기도 뭐한 약간 긁힌 상처가 발단이 되었다...상속자는 없었다. 울어주는 이도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돈밖에 모르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바라던 것을 모두 다 가졌었다. 아무에게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마 바스팽의 인생의 이유는 거기에, 돈을 모으러 세상에 온 데 있지 않았을까. 결국 그런 삶의 이유가 여타의 이유들보다 특별히 어리석다고 할 수 없다. 바스팽은 인생을 잘 누리고 갔다. 그가 죽은 뒤 모든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었다. 국가는 상복도 입지 않고 마냥 희희낙락하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되었다...'


이런 문장들을 쓰고 이런 인물들을 만들기 위해,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와야 했을까.
책 날개를 펼쳐 이마가 훤한 필립 클로델의 사진을 봅니다. 조금 찌푸린 미간과 굳게 다문 입술. 그는 자신의 작품과 꽤나 닮아있습니다. 아마도 조용한 저녁 멍하니 TV뉴스를 보다가, 누군가가 건낸 와인 잔에 고개를 흔들고는 일어나, 서재의 문을 잠그고 창문을 열고 나무 냄새 나는 책상에 앉아, 천천히 그는 무언가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상상해봅니다...

'나는 쓴다. 그게 다다. 그건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나와 대화한다.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 나는 사람들의 초상을 낱낱이 기록한다. 손도 더럽히지 않고 무덤을 판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개운하게 책장에 꽂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다시 펼쳐 플래그를 붙여둔 부분들을 읽고 나서도, 식탁 위에 책상 위에 어물쩍 올려놓고, 한참을 치우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무슈 린의 아기>를 당장 사서 연달아 읽어야 할 지, 한참 기다렸다 후에 읽어야 할 지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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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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