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부터 지금까지 생활에서는 짜증과 권태와 노동과 의무와 고민들이 뒤죽박죽된 나날을 보냈으나,
그나마 피폐한 정신으로 관람한 영화들은 꽤나 만족스러웠으니.
1. Gran Torino (★★★★)
영화를 보고 나오며, 당분간은 누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이라고 물어온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이스트우드의 이스트우드를 위한 영화. 스토리 라인은 크게 특이할 것이 없다. 짐작 가능한 전개와 다소 낯간지러운 '살신성인과 권선징악'의 마무리. 간혹 연륜이 느껴지는 대사들이 반짝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Walt Kowalski 라는 캐릭터의 쓴웃음 나오는 매력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못마땅한 애송이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나오는 아래 사진의 저 으르렁거림.
최고였습니다. m(_ _)m
이스트우드의 나이, 올해 79세(1930년생). 살아있는 전설인 이 배우는 지금 헐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히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꼽힌다.
그처럼 허리를 꽂꽂이 세우고, 젊은이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타인의 인정이나 비난 따위 관심없이 마지막 날까지 하고픈 일 하다 가겠다는 담담함을 얼굴에 활짝 드러내는, 그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멋쟁이 노인네가 되고 싶다.
2.
Kirschbluten - Hanami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
건조하게 내용만 나열해놓고 보면, 이렇게 궁상맞은 영화도 없을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노부부, 타인보다 더한 자식들과의 거리감, 아내의 못이룬 꿈을 뒤늦게 대신 체현하려는 늙은 남편의 필사적 노력...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애잔하면서도 디테일하게 나름의 목소리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도리스 되리는 재능있는 감독이다. 화면의 색감과 그림같은 구성은 이 '칙칙한 노인 영화'를 세련되게 감싸준다.
늙은 루디의 방황과 슬픔은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아마 이 영화가 '시간의 흐름'이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얼마나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럼에도 묵묵히 살아나가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담담하게 바라보려 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그것도 꽤 많이 흑흑 흐느껴- .
벚꽃이 떨어지는 공원에서 핑크빛 전화기를 들고 부토를 추는 소녀 '유'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영화 내내 이 요정 내지는 천사 캐릭터인 노숙자 소녀의 존재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코트 속에 아내의 스웨터를 입은 루디 혼자 후지산을 찾아 헤매는 내용이었다면, 내 부모님과 나 자신의 노년기와 죽음을 상상하며 그저 끝없이 우울하기만 했을 터.
DVD를 구입해 엄마에게 선물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감성이 풍부한 어머니를 가진 딸들은 이런 고민도 한다.
3.
똥파리 (★★★☆)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충동적으로 보러 간 영화였다. 해외에서 상받은 것, 독립영화라는 걸 내세워 거저 먹으려는 거 아냐, 의심하고 눈 흘기며 상영관으로 들어갔는데.
반쯤 보고 나자, 이거 영화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만들었네,싶었다.
엔딩 타이틀에서 저 낯선 얼굴의 걸출한 배우가 감독이자 각본가라는 사실을 알고 정말이지 깜딱, 놀랐다.
오랜만에 목도하는 한국영화의 스타 탄생.
난무하는 폭력과 욕설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간혹 저질영화라고 비난하기도 하던데,
영화를 껍데기로만 보려는 이들은 그저 맥 라이언 나오는(이제 너무 늙어 못 나오나?) 화사한 로맨틱 코미디나 보면 되는거고.
화면 가득 거칠고 싱싱한 재능이 엿보였다, 최소한 내 눈에는. 아직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번 영화보다 다음 영화를 기대하겠다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다.
4.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휴 잭맨의 알흠다운 근육질 몸매 뿐.
68년 생인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관객들이 파도타기와 함께 휴 잭맨 만세삼창 정도는 해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더라.
그외에는 다들 아시다시피의 내용과 아시다시피의 액션.
재미있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동생을 믿고,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했다가
머리만 아팠다. -_-
이제 나는 결코 '젊은 감각'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신나게 볼 수 없음을
뼈져리게 자각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런데, 클래식 스타트랙 시리즈는 원래 진지하고 묵직한 '갈락티카'
분위기 아니었나?
가볍고 단순한 오락거리 우주 액션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로뮬란 우주선 등 잘빠진 디자인과 자연스러운 CG는 감탄스럽다.
Posted by na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