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지 말 지 고민이시라면,

우선 이 블로그의 다른 영화감상 후기를 슬쩍 살펴본 다음,

'얘는 내가 관심없는 영화만 보고 좋아하네', 싶으면 바로 <T4>예매로 go go.  

반대로 '나랑 대략 흡사한 취향'이라는 판단이 드신다면,

차라리...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
를 두 번 관람할 것을 추천함. 

이제 상영하는 극장이 없으려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였던가, '내 남편의 여친도 좋아'였던가, 

사업적 감각은 엿바꿔 먹은 듯한 한국 배급사 측이 <아내가 결혼했다> 삘을 내려고 괴상망측한 제목으로 바꿔버려 흥행이 절반 정도는 줄어들었을 영화인데 -제목만 보고 국산 불륜 영화인 줄 알고 계속 '비키 크리스티나..'는 언제 개봉하냐고 기다리던 사람도 있었다더라-

우디 알렌 영화 중 가장 유쾌하고 귀여운 유머가 가득한 깜찍한 작품이었다. 아담하고 세련되면서도 눈여겨 볼 소품이 가득한 작은 정원같은 느낌이랄까.


특히 이 영화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의 매력이란. <라 빠르망>에서 모니카 벨루치에 버금간다.

우디 알렌이 스칼렛 요한슨 '빠'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안티'였던 듯. 요한슨과 크루즈가 나란히 나오는 장면이 많은데, 이건 민간인과 수퍼모델만큼 '포스'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크루즈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팜므파탈, 천상의 매력을 보인다면, 요한슨은 그냥 금발 빼면 남는 게 없는 옆집 여대생 같이 나온다.

이로서 나의 여배우 취향 계보(라붐의 소피 마르소-하이틴 시절 제니퍼 코넬리-라 빠르망의 모니카 벨루치-페넬로페 크루즈)가 완성.

제목은 터미네이터로 달아놓고, <vicky cristina barcelona> 얘기만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이, T4에 대해서는 그저 '치고 부수고 폭파하고 찢고 깨고 달리고' 등의 표현 밖에 쓸 수가 없는지라. 무슨 놈의 폭파 장면이 그리도 많이 나오는지, 파괴본능을 자극하면 소비가 촉진되긴 하겠지.

볼 거리에 있어서는 <스타트랙>보다 못했고, 스토리는...기억도 안 나네, 뭐 신경 안 써도 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마이클 빈이 나오는 1984년작을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얘기란 걸 감안하고 들으시길.  

1984년의 터미네이터. 존 코너의 아버지 카일 리스로 분한 마이클 빈.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
딱 한 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2006년 10월 9일 북핵실험 관련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때였는데, 당시 정치부 막내였던지라 청와대 출입 선배의 어시스턴트로 2~3일간 파견됐었다.

내가 할 일이야 기자회견이나 브리핑 내용을 열심히 받아치는 '인간 타자기' 역할 정도이니, 관심사는 온통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인 청와대 구경. 기자실과 춘추관을 쓸데없이 왔다갔다하고 윤태영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을 받아 적으며 '웨스트윙'을 떠올리곤 했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지금 아니면 언제'의 마음가짐으로 일찌감치 앞쪽에 자리를 잡고 대통령을 기다렸었는데. 입장한 노 대통령은 관례대로 앞좌석 기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가볍게 인사를 하는 과정을 거치셨다.

스쳐 지나간 몇 초에 불과했지만, 당시 그의 모습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이유는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 다른 정치인들과 사뭇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야,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친화성. 진심이건 가식이건 간에 그들은 접촉하는 시민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더구나 국민을 대신해 접촉하는 언론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한 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하여 정치인들과의 악수와 인사의 과정이란, 다소 낯간지러운 성격의 경험일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기자 중 막내 하나를 기억하고 있을리 만무하건만, 친절과 (좋은 의미에서) 아는 체의 홍수 덕분에 처음 정당팀에서 일했을 때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친화력 악수' 제공자는 손학규 전 지사. 손아귀 힘이 얼마나 강하시던지, 그리고 얼굴 가득한 그 미소는 역시 아줌마 유권자들에게 통할 수 밖에 없는 무기였다. 시장 시절과 대선 후보 시절 만난 이명박 대통령도 기자들에게 허물없는 친근함을 보여준 정치인이었다. 

어쨌거나, 이같은 '정치인 악수'의 공통점으로는 첫째 정면의 시선 맞춤(익숙해지기 전에는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똑바로 눈을 맞춘다), 둘째는 악수하는 손에 들어간 힘(슬쩍 잡고 마는 것이 아니라 손에 힘을 실어 물리적으로 '기억'을 남긴다) 들 수 있는데.

노 대통령과의 악수에는 이 두 가지 특징이 모두 없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기자들의 손을 쥐었고, 시선은 살짝 비켜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보통 그러하듯, 마주선 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손을 쥐는 것을 조금은 어색해하는 느낌이었다. 낯선 기자여서인가 싶어 청와대 출입 타사 선배들과의 악수도 유심히 지켜봤는데,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북핵 사태로 워낙 피로해서, 경황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그날 하루만 보였던 태도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딱 한 번의 경험이었으니. 하지만, 이 날의 악수는 나에게 '노통은 정치인인 것이 행복할까'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짧은 정치부 생활에서 만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때로는 진흙탕이 되는 이 '바닥'을 즐기고 있었다. 존경받는 검사, 판사, 교수였던 그들이 쌍욕 듣고 몸싸움도 불사해야 하는 정치판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들은 재미있어 하고 있었고, 보람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악수 한 번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웃기지만, 그가 풍기는 이미지와 행동들은 분명 그런 의문을 갖게 했다. 기존의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노통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지만, 그런 '다른 모습' 때문에 그에게 닥칠 시련은 두 배로 느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

휴일 오전, 뉴스 속보를 접하며, 그 날의 악수를 떠올렸다. 그가 '전형적인' 또는 '정치인스러운' 정치인이었다면, 결코 자살이라는 결말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 거다. 

원칙적으로, 전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개인이기에 앞서 역사의 한 부분이고, 그의 시대가 국민의 평가를 받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서서 어떤 형태이건 (살아남아) 책임을 지는 것이 의무다. 세속적인 판단으로도, 그렇게 살아남다보면 다시 긍정적인 시선이 돌아오는 것이고 정치계의 상징적 원로로 역할을 되찾을 날이 분명 오는 것인데(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를 보아도).

그는 목숨을 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정치인다운, 나라의 수장을 지낸 사람다운 계산과 의무감 이전에, 개인으로서 그의 상처입은 자존감과 절망이 더 깊었던 것이다. 

남은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리워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정치인스럽지 않은' 기질 때문에 더 힘겹고 무거운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업적에 대한 평가와는 논외로,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하나의 상징으로 남을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이렇게 생을 마감한 것은, 지지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오랫동안 멍에로 남을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

5월초부터 지금까지 생활에서는 짜증과 권태와 노동과 의무와 고민들이 뒤죽박죽된 나날을 보냈으나,
그나마 피폐한 정신으로 관람한 영화들은 꽤나 만족스러웠으니.

1. Gran Torino (★★★★)


영화를 보고 나오며, 당분간은 누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이라고 물어온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이스트우드의 이스트우드를 위한 영화. 스토리 라인은 크게 특이할 것이 없다. 짐작 가능한 전개와 다소 낯간지러운 '살신성인과 권선징악'의 마무리. 간혹 연륜이 느껴지는 대사들이 반짝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Walt Kowalski 라는 캐릭터의 쓴웃음 나오는 매력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못마땅한 애송이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나오는 아래 사진의 저 으르렁거림.

최고였습니다. m(_ _)m

이스트우드의 나이, 올해 79세(1930년생). 살아있는 전설인 이 배우는 지금 헐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히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꼽힌다.

그처럼 허리를 꽂꽂이 세우고, 젊은이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타인의 인정이나 비난 따위 관심없이 마지막 날까지 하고픈 일 하다 가겠다는 담담함을 얼굴에 활짝 드러내는, 그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멋쟁이 노인네가 되고 싶다.

2. Kirschbluten - Hanami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
 
건조하게 내용만 나열해놓고 보면, 이렇게 궁상맞은 영화도 없을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노부부, 타인보다 더한 자식들과의 거리감, 아내의 못이룬 꿈을 뒤늦게 대신 체현하려는 늙은 남편의 필사적 노력...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애잔하면서도 디테일하게 나름의 목소리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도리스 되리는 재능있는 감독이다. 화면의 색감과 그림같은 구성은 이 '칙칙한 노인 영화'를 세련되게 감싸준다. 
  
늙은 루디의 방황과 슬픔은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아마 이 영화가 '시간의 흐름'이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얼마나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럼에도 묵묵히 살아나가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담담하게 바라보려 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그것도 꽤 많이 흑흑 흐느껴- .

벚꽃이 떨어지는 공원에서 핑크빛 전화기를 들고 부토를 추는 소녀 '유'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영화 내내 이 요정 내지는 천사 캐릭터인 노숙자 소녀의 존재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코트 속에 아내의 스웨터를 입은 루디 혼자 후지산을 찾아 헤매는 내용이었다면, 내 부모님과 나 자신의 노년기와 죽음을 상상하며 그저 끝없이 우울하기만 했을 터. 

DVD를 구입해 엄마에게 선물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감성이 풍부한 어머니를 가진 딸들은 이런 고민도 한다.





3.똥파리 (★★★☆)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충동적으로 보러 간 영화였다. 해외에서 상받은 것, 독립영화라는 걸 내세워 거저 먹으려는 거 아냐, 의심하고 눈 흘기며 상영관으로 들어갔는데.

반쯤 보고 나자, 이거 영화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만들었네,싶었다.
 
엔딩 타이틀에서 저 낯선 얼굴의 걸출한 배우가 감독이자 각본가라는 사실을 알고 정말이지 깜딱, 놀랐다.

오랜만에 목도하는 한국영화의 스타 탄생.

난무하는 폭력과 욕설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간혹 저질영화라고 비난하기도 하던데, 

영화를 껍데기로만 보려는 이들은 그저 맥 라이언 나오는(이제 너무 늙어 못 나오나?) 화사한 로맨틱 코미디나 보면 되는거고.

 
화면 가득 거칠고 싱싱한 재능이 엿보였다, 최소한 내 눈에는. 아직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번 영화보다 다음 영화를 기대하겠다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다.

4.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휴 잭맨의 알흠다운 근육질 몸매 뿐.

68년 생인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관객들이 파도타기와 함께 휴 잭맨 만세삼창 정도는 해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더라.

그외에는 다들 아시다시피의 내용과 아시다시피의 액션.   

                                                    

 








                   재미있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동생을 믿고,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했다가
                   머리만 아팠다. -_- 

                   이제 나는 결코 '젊은 감각'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신나게 볼 수 없음을
                   뼈져리게 자각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런데, 클래식 스타트랙 시리즈는 원래 진지하고 묵직한 '갈락티카' 
                   분위기 아니었나? 

                   가볍고 단순한 오락거리 우주 액션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로뮬란 우주선 등 잘빠진 디자인과 자연스러운 CG는 감탄스럽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 10점
로렌 슬레이터 지음, 이상원 옮김/에코의서재

별은 셋 반. 정도가 합당하겠다.
제목만 보고 책을 사게 되는 것, 나에게는 무척 드문 경우다.

보통은 작가가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지, 내 취향과 거리가 먼 요소가 하나라도 있지 않은지 꼼꼼하게 훝어보는 편. 이 책은 드문 몇 케이스에 속한다.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란 제목은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거짓말은 자기애의 한 방식, 자기보호의 비뚤어진 모습이다. 이 때의 거짓말은 상대를 속여 실질적 이익을 보려는 계산적인 종류의 것이 아닌, 할 필요없고 얻게 되는 이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을 들으면 절로 움직이는 무용수의 다리처럼 어느새 스르르 흘러나와버리는 종류다.

유감스럽게도, 책은 <왜>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다>라는 어깨 두드림과 함께,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은 죄악이지요. 모든 죄악은 신으로부터의 격리를 뜻하니까요." "좋다.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하지만 로렌, 난 네가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넌 거짓말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속임수라는 건 네 성격의 일부이니 결국 넌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야." p.251

<간질>이라는 육체적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책 속 로렌의 거짓말을 격렬하고 필사적이다. 첫 번째 이유는 사랑받기 위해서. 어릴적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원했고, 이후에는 누구든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발작을 일으켰다. 두 번째 이유는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남과 구별되는 특징을 부여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기기 위해 간질환자란 거짓말을 선택했던 것.

이 책이 픽션이냐, 논픽션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는 저자가 사용한 마케팅 트릭에 불과할 뿐, 정작 독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더구나 로렌 슬레이터가 본문을 통해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고 있는 마당에 '논픽션' 여부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논픽션 논쟁 자체가 작가가 자신의 책에 '특별함'을 부여하려는 <거짓말>인 셈이다.

온갖 혼란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스로를 비소설 작가로 생각하고 그렇게 인정받고 싶습니다...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 밝히지 않기고 결심한 이유는 첫째, 저라는 존재의 핵심을 그려 보이기 위해서이고, 둘째, 생각의 길을 잘라버리는 균열 속에서 저처럼 사는 것은 외롭기 때문입니다. 편집진이나 독자들이 모두 저를 따라와 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가지고 노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혼란 속에 들어와 달라고, 발밑의 대지를 포기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공중에 붕 뜬 공포스런 상태가 다른 어느 것보다 진실되기 때문입니다...p.204~205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책에서 로렌이 제시하는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은 윌리엄 제임스의 '의지 B'로 요약된다.

윌리엄 제임스는 의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A라는 의지와 B라는 의지다. 의지 A는 학습으로 얻어지며 우리가 고개를 높이 들고 불평불만을 꾹 누른 채 열심히 일하는 종류의 의지다. 반면 의지 B는 한층 느슨해 보이지만 지니기는 더 어렵다. 이는 의욕 충만이 아닌 기꺼운 마음이다. 한판 대결이 아니라 인생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깨지기보다는 구부러지는 상태. 파도를 멈추기보다는 그 위에 올라타려는 용기다...의지 B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적극적인 수용, '네.'라고 말하기다. 이 의지를 배우고 싶다면 자신의 목소리와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의지 B를 안다면 인생을 아는 것이다...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흐름을 타다.'라든지 '적수의 에너지를 내 무기로 삼는다.'는 표현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p.74~75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나 작품의 가치와는 별개로, 윌리엄 제임스의 '의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다 한다.중간중간 다소 억지스런 로렌의 방황과 성적 집착 부분은 독자를 다소 지루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은 책이 나름대로의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던지는 방식으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파도에 맞서 싸우려는 어리석음. 구부러질 바에야 부러지겠다고 몸을 꼿꼿이 세우는 오기. 그게 얼마나 바보 짓인지를 알기까지, 인간에게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주어진 인생을 그대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 시간의 무게를 견디려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사람,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기 보다는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그런 이가 진짜 삶의 방식을 아는 사람이라고, 지금은 수긍한다.

그래서, 이 책을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실천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지하기라도 해보라는 뜻에서 말이다. 나는 그러질 못했었다.
http://nadie.tistory.com2009-03-29T08:15:090.31010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


한 마디로: 캐스팅에 돈을 쏟아붓느라 대본 살필 여력이 없었던 영화.


명동에 나갔다 남는 시간에, 마침 딱 시작하는 영화이길래 뛰어 들어갔건만. 보는 내내 '도대체 이런 영화를 저런 배우들을 데리고 왜 찍었을까'라는 의문에 휩싸이다 나오다.

굳이 영화의 주제를 찾아 내자면,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의 인생은 구질구질하고 미저러블하다?!' 정도인 듯.

영화 속 여인들은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결혼하기 위해 갖가지 괴상망측한 행동을 벌이는데.

캐릭터들의 비정상성은 -이들이 실제로 지니퍼 굿윈이나 제니퍼 코넬리처럼 생기지 않았다면- 애인이 없거나 버림받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혹시 증상이 심각해 정신과 치료받는 여성들에게서 소재를 얻었나?

다섯 명의 여성 캐릭터 중 단 하나도 감정을 이입할 만큼 현실적이거나 친밀하지 않았다. 영화 중간중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여성 관객들은 '어~어~'하고 비호감과 어이없음이 어린 감탄사를 내뱉곤 하던데.

해서 '이거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작가 또는 주변에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왕따 여작가가 쓴 대본이 분명하다'고 판단.

알고 보니 남녀 작가들이 함께 썼더군. 당신들, 여자 친구 별로 없지? 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지.


.

지지(지니퍼 굿윈)는 스토커이자 중증의 애정갈망증 환자.

제닌(제니퍼 코넬리)은 편집증, 성기능장애, 우울증, 감정불안정 환자.

애나(스칼렛 요한슨)는 판단력이나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빔보,
 
비중이 다소 작았던 베스(제니퍼 애니스톤)와 메리(드류 베리모어)는 캐릭터가 불분명하나, 결혼과 연애에 목맨다는 공통점만은 분명함.

이런 류의 여성 타겟 영화들이 '섹스 앤 더 시티'를 흉내내는 것도 이젠 식상하다 못해 지겹다.

여자들끼리의 도가 넘치는 우정-저렇게까지 서로 사생활을 까발리면 친구가 아니라 운명공동체 아닌가-, 여자친구의 데이트 생활에 해결사 노릇을 하는 친절느끼한 게이 친구들, 스토리 전개를 껄끄럽게 만드는 억지 설정들...


제니퍼 코넬리와 드류 베리모어의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이들어 가는 모습은 반가웠으나-확실히 제 나이로 보이긴 하더라고-, 베리모어는 이제 이런 상큼수줍 노처녀 역할은 벗어나야 할 듯 하다. 적당히 애 엄마 역할로 변신하지 못하면 앞으로 곤란할텐데.


영화는 내내 '소년이 소녀를 괴롭히는 이유는 바로 그 애를 좋아해서다'라는 어릴 적 엄마 말씀을 믿으면 안된다고 되풀이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단역들은 얼마나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는지를 설명하고,  알렉스(저스틴 롱)는 지지에게 '전화를 안 하는 남자는 피치못할 사정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냥 너에게 관심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말한다.


하지만, 표면적 설정과 대사와는 달리, 이 영화의 속내는 젊은 여성들에게 '연애와 남자에 대한 환상과 신데렐라같은 해피앤딩에의 갈망'을 더 자극하는데 있다. 아마도, 그 쪽이 더 돈이 된다고 여긴 모양인데.

이런 영화야말로 '참 나쁜 영화'다. 겉과 속이 다르고, 목표의식이 없으며, 스토리도 없고, 매력도 없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

사용자 삽입 이미지


CSI와 더불어 마리랑의 훼이보릿 TV 프로그램....제목이 뭐였더라, Q채널이었나 야생동물 다큐.

다들 안 믿는 눈치지만, 정말 마리랑은 좋아하는 프로만 골라 시청한다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뒤집기 요가 자세로 광고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리랑.. 시선은 여전히 TV를 향해 있는데.
뭔 광고를 이리 오래하는지,라며 투덜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
지난 번에 한 번 소개한 적 있는(http://nadie.tistory.com/82) 취향 분석 테스트입니다.
최근에 정식 오픈을 했다는.

개인적으로 연관이 없지 않은 사이트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한 번 해볼만 합니다.

다소 삐딱한 마음;;으로 여러 번 테스트를 해봤는데, 일관되게 하나의 취향으로 결정되는군요.

그다지 '완벽'이나 '노력'과는 상관없는 타입이라 스스로 생각합니다만, 분석을 읽다보면 어느덧 그렇지, 내 취향이 좀 이래, 하며 제작자의 의도에 말려 들어가게 된다는. ㅎㅎ

취향 이름이 좀 마음에 안 들기는 합니다. 좀 은근 은근, 세련되게 붙이지 그랬어, 너무 직설적이잖아?

어쨌거나, 아래 심재휘의 시를 비롯, 주옥같은 텍스트들을 여럿 추천했으니
사이트 성공하면 국물이라도 조금, 쿨럭.

이드솔루션 사이트 (http://www.idsolution.co.kr/) 에서 테스트 해 보세요.


지적이고 문학적인 장인의 취향

당신은 가장 지적이고 수준 높은 취향을 가졌습니다.

당신의 취향은 이중적입니다. 당신은 논리적이고 정교한, 치밀하고 계획적인 것들 좋아하면서도,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지지합니다. 이성적인 격식(decorum)을 중시하면서도 자유와 열정을 선호하는, 이중적인 완벽주의자라고 하겠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20세기 인류가 배출한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한명.
가난, 냉대, 정치적 핍박, 치명적 뇌손상 등에 불구하고
인간 창의력의 극점에 달했던 인물.
당신의 취향에겐 '영웅'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당신의 취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그리스의 소피스트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날 '궤변론자'로 폄하되지만, 소피스트들은 국내외 다양한 생각과 사상을 받아들여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했고, 표현의 자유와 가치의 다양성을 존중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수없이 많은 위대한 희곡과 미술 작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좋아하는 것
당신의 취향의 폭은 상당히 넓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많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것을 묘사하자면, "과감한 독창성과 분출하는 창의력을 철저한 절제력과 단련된 수양으로 다듬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글을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후회는 한 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내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에 없다
는 것을 안다 한 평생은 그런 것이다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심재휘


저주하는 것
당신이 저주하는 사람들은 3부류로 나뉩니다. 첫번째, 가짜를 가짜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두번째, 가짜를 진짜라고 우기는 사람들. 세번째, 가짜인줄 알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판치는 사회일수록 당신은 불만과 혐오로 가득할 겁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세상을 온통 증오하는 까다롭고 시건방진 염세주의자로 착각하기도 하겠죠.

그러나 문제는 가짜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연기가 안되는 사람이 배우랍시고 돈을 버는 세상, 노래가 안되는 사람들이 가수랍시고 대접을 받는 세상, 이런 세상에 불만과 혐오를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겠죠.
 
당신 중 일부는 극단적인 엘리트 취향이라 단순히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취향을 가진 인간을 멸시-차등화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심한 경우 우생학에 기반한 파시즘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관점이죠.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nadie